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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인터넷 비즈니스 역사 속 뒷이야기
오늘날의 인터넷과 웹 비즈니스의 발전 뒤에 숨은 초창기 인터넷 비즈니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보겠습니다. 주요 IT기업에 대한 내용으로, 가볍게 읽어볼 만한 에피소드 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닷컴 열풍의 원조 : 넷스케이프
1994년 미국 국립 슈퍼컴퓨터 응용센터 NCSA에서 모자이크 브라우저를 개발해 월드와이드웹의 시대를 연 마크 앤드리슨은 NCSA를 그만둔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작은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창업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회사를 창업해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고,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발해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해서 대박을 거두는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실리콘밸리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례를 최초로 만든 것이 넷스케이프였고 아직 마크 앤드리슨이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기 전이었습니다. 이후 모든 벤처기업들은 넷스케이프가 걸어간 길을 따라 가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넷스케이프가 주식시장을 상장해 큰 성공을 거두고 지속적으로 사용자를 늘려가고 있을 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인터넷과 웹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당시 미국 IT 업계를 지배하던 '초고속 정보통신망(Information Super Highway)'의 주인공은 웹과 인터넷이 아니라 tv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최대 14.4Kbps 정도의 속도만 가능한 전화선으로는 미래에 필요한 통신 대역폭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빌 게이츠는 생각을 바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상으로 배포하면서 넷스케이프의 몰락을 주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후에도 인터넷 분야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호랑이 새끼를 키우다 : 구글
빌 게이츠는 스탠퍼드대학교에 건물을 지울 수 있도록 600만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그런면서 언젠가는 이 건물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할 회사를 만들 인재가 배출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스탠퍼드대학교 내의 건물은 '월리엄 게이츠 컴퓨터 사이언스 빌딩' 이고 그 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같이 공부하던 두 학생이 나중에 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그 두 학생의 이름은 바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구글의 공동 창업자)입니다.
구글이 한창 초기 성장세를 구가할 무렵, 구글의 CEO를 새로 뽑으려 할 때 브린과 페이지가 원하는 1순위 후보는 스티브 잡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올 리가 없으니 대신 선발했던 인물이 바로 에릭 슈미트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잘못된 고집 : 아이튠스
MP3 플레이어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초기에 애플에서 근무했었던 직원 2명이 개발한 음악 라이브관리 및 재생 프로그램 사운드잼(SoundJam)을 애플이 2000년 3월에 매입했습니다. 사운잼은 당시 최고 인기 있었던 사운드 재생 프로그램인 윈앰프와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2001년 1월 9일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아이듄스(iTunes)로 발표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비록 인터넷 닷컴 폭발기에는 별로 관여하지 못했지만 이후 PC는 미디어 허브가 될 것으로 예측했고 그 중심을 음악이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아이튠스는 당시 맥에서만 실행되었는데, 윈도우에서도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회사 내부의 주장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낸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진 안된다." 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굴복하고 2003년 10월에 아이튠스 윈도우 버젼을 발표합니다.
이것을 계기로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회사가 됩니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만든 회사는 우리나라 기업인 디지털캐스트 였습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애플에 MP3 플레이어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긴 아쉬운 역사가 있습니다.
비디오 대여 연체의 결과 : 넷플릭스
오늘날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넷플릭스를 창업한 계기는 〈아폴로 13〉 DVD를 대여했다가 연체하면서 연체로 40달러를 낸 것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기존 DVD대여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을 통해 사업 가능성을 본 것이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처 신화의 탄생 : 페이팔
페이팔을 1999년 7월에 최초로 설립한 피터 틸은 2000년 3월 비슷한 서비스를 하던 엑스닷컴(X.com, 일론 머스크가 설립)과 합병되고 2002년 2월 15일 상장해 크게 성공합니다. 그땐 많은 이들이 닷컴 버블 붕괴로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을때라 분위기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으니 대단한 것입니다. 그 후 이베이가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매입함으로써 대박 신화를 현실로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페이팔에 참여 했다가 큰 돈을 벌게 된 이들이 향후 그 돈을 가지고 투자한 회사들이 테슬라, 페이스북, 엘프, 링크드인, 유튜브, 얌머 등입니다. 이들이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좌우하는 페이팔 마이파들입니다.
가십 언론, 대박을 터뜨리다:드러지 리포트
CBS 스튜디오의 기념품을 점원이었던 매트 드러지는 1994년 헐리우드의 가십을 주로 다루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로 일하다가 듣는 이야기 또는 CBS 쓰레기통에서 찾은 내용을 가십으로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 1월 〈뉴스워크〉더 알고 있긴 했지만 진위가 의심스러워 보도를 보류한 루머를 처음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 내용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인턴과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것. 바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야기였습니다. 그 후 6개월간 드러지의 블로그에는 매월 600만 명의 방문객이 방문했습니다. 이는 〈타임〉지를 능가하는 수준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2007년 드러지 리포트(DrudgeReport.com)는 한 해 동안 수백만 달러의 광고 매출을 사이트에서 기록했다고 합니다.
20대 청년의 성공 신화 : 페이스북
넷스케이프가 성장될 때 마크 주커버그는 11살이었습니다. 그는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인 AIM 헤비 유저였습니다. 최초의 소셜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는 프렌드스터(Friendster)가 등장할때부터 사용했으며 냅스터(Napster)의 등장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1999년 당시 15살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는 인터넷에 처음으로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며 다음과 같이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Hi, my name is ··· Slim Shady(에미넘의 앨범에 등장하는 인물로, 당시 주커버그가 랩 음악에 심취한 10대 였음을 알 수 있음)." 그리고 그가 만든 페이스북을 10억 달러에 매각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겨우 23살이였습니다.
매스 미디어 시대가 저물다 : 온라인 광고의 발달
1994년 웹에서 최초로 배너 방식의 광고를 도입한 후 전체 광고 매출액은 5천만 달러 수준이었고 1997년에 비로소 온라인 광고 매출이 10억 달러에 이릅니다. 당시 기업의 전체 광고시장 규모는 600억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2015년 전체 디지털 광고시장의 규모는 596억 달러로 성장합니다. 2018년 기준 국내광고시장은 전체 시장 중 인터넷과 모바일이 4조 원이 넘는 규모로 전체 광고시장의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이베이 기업명의 유래는?
MakeItSo.com, Relentless.com, Cadabra.com, Browse.com, Bookmall.com, 그리고 Aard.com, Awake.com···· 이 도메인들은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자신의 웹사이트의 이름이 결정되기 전 후보였던 이름들입니다. 결국 기업명을 아마존으로 결정한 이유는 A로 시작하는 단어이면서 아마존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베이(eBay)는 왜 이베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는 이숍(eShop)이라는 기업의 창립 멤버였는데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에 팔고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프리랜서 겸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자신의 1인 기업 이름을 에코베이 테크놀로지 그룹(Echo Bay Technology Group)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도메인으로 에코베이(EchoBay)를 등록하려고 하니 이미 누군가 등록을 한 상황이라 더 짧게 줄여서 이베이(eBay)라고 도메인을 등록하고 웹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을 통한 경매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를 구현한 웹사이트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기존 웹사이트에 올렸는데 URL이 eBay/aw 였습니다. 처음 이름이 옥션웹(Auction Web)이어서 aw가 붙은 형태입니다. 후에 투자를 받고 사업을 본격화 하면서 이베이 웹사이트의 다른 내용은 모두 버리고 경매 서비스 사이트의 이름을 이베이로 바꿉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브라이언 맥컬로우의 「인터넷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How the Internet Happende)」에 나온 이야기 중에 일부로 꾸며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1990년 중반, 국내에 아직 인터넷 벤처 열품이 불기 전에 일입니다. 한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당시 해당 공공기관에 한글 정보검색 시스템과 전자우편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정보검색 프로젝트 담당했었습니다. 해당 정보검색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구축되었고, 그 후 검색 프로젝트 파트의 팀원은 회사에서 새롭게 만든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작은 벤처로 독립을 했습니다. 그
때 회사 내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사내 벤처에 참여 하지 않았습니다.
그후 사내 벤처에서는 웹 기반 정보검색 시스템을 오픈했고 이름을 '웹 글라이더' 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사내 벤처가 후에 네이버의 모태가 됩니다. 물론 당시 사내 벤처에 참여했던 분들은 모두 큰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아직도 가끔 지인을 만나게 되면 아쉬운 투로 이야기합니다. 왜 그때 그 팀을 따라 나가지 않았느냐고, 그랬다면 인생이 바뀌었을텐데 하는 후회를 합니다. 후회는 늘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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