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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대한 유감
얼마 전 작은방에서 어떤 물건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어딘가에 둔 기억은 나는데 보이지가 않아 방의 책장 위에 쌓아둔 정체 모를 박스들을 모두 하나씩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연애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우연히 다시 열어보았다. 그리고는 물건 찾는 것을 잠시 잊은 채 편지 하나를 꺼내 읽어보며 오래된 기억을 추억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문자와 숫자 정보의 디지털화에서 시작한 디지털 시대는 음악, 사진, 편지를 넘어 이젠 사람과 사람의 관계까지도 디지털화하는 세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덕분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글과 사진을 개인이 만들어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에서 매일 엄청난 양의 사진과 동영상과 글들이 창조되고 인터넷을 통해 흘러 다닙니다. 분명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의 정보들이 만들어지지만 정작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진, 편지, 음악, 동영상은 모두 실체가 없는 디지털 형태입니다. 음악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몇 년간 새로 산 CD나 음반은 한 장도 없습니다. 사진은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서 벽에 걸어놓은 액자의 사진은 아주 오래전 찍은 사진 그대로입니다. 책상에는 누구와 주고받은 편지 한 장 없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새로 산 책도 한 권 없습니다. 모두 전자책 단말기 안에 있어서입니다. 콘텐츠가 가장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정작 주변을 돌아보면 최근 몇 년간 만질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사용하던 컴퓨터가 갑자기 멈추더니 아예 부팅이 안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평소 백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스마트폰의 백업은 열심히 해놓았는데 생각해보니 그 백업 데이터가 모두 컴퓨터 안에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전부 거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다행히 수리 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었고 데이터도 손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사진 데이터가 손상되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함께 디지털 사진의 허망함이 새삼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인류 문명은 문자를 발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문명에서 점토판에 문자를 새긴 기록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면서 당시 문명이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우리에게 문자 기록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정보시스템 내에만 존재하는 날이 온다면 어떨까? 모든 게 디지털화된다면 인류가 가진 문명이 물리적인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고 무형의 상태로만 유지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의 유물 또한 유형의 실체로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소설책의 초판도 없을 것이고 역사에 남을 음악의 초판 앨범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해 줄 음반이나 책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난날을 추억하게 될까? 엔 젠가 어떤 업체에서 페이스북(지금 메타)에서 활동한 내역을 진짜 책으로 출판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집 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학창 시절에 적었던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하고서 그리움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최근 10여 년간의 사진, 음악, 글, 생각들은 집에 있는 USB 외장하드에 들어 있습니다. 물론 이중으로 백업을 해놓기는 했지만 왠지 불안한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어렸을 적 모습을 담은 영상은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놓았지만 여전히 비디오테이프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물론 편리하지만 아날로그의 강점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해킹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모든 지적 정신적인 활동의 결과물은 물론 누군가의 세세한 일거수일투족을 스마트폰으로 항상 감시할 수 있다는 설마했던 걱정이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도 디지털 기기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편리함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스마트폰을 나쁜 쪽으로 활용하는 이들에 의해 '디지털 포비아(Digital Phobia)'라는 새로운 두려움이 생기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온라인으로 철저하게 분석, 감시되는 사회가 오는 것은 분명 불행한 사진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생산, 전파, 소비되는 분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지도 이미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사진과 음악은 디지털로 완전히 넘어왔으며 책도 점차 디지털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 역시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디지털화되었습니다. 역시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모든 면을 훗날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추억에 잠길 수 있을지, 친한 친구와 주고받았던 글을 나중에도 읽어볼 수 있을지, 삶의 어느 순간 마음을 위로해주면 손때 묻은 음반을 꺼내 들고 오디오에 걸어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왔기에 옛 시절을 추억할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요즘 세대는 먼 훗날 어떻게 추억에 잔기 게 될지 궁금합니다. 분명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런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무엇보다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개인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쉬운은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미국 레코드산업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미국 내 아날로그 LP 음반의 판매액이 1986년 CD에 추월당한 이후 처음으로 CD 판매액을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스트리밍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미디어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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