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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TORY

IT 전자제품에 없어서는 안되는 부품인가 소모품인가, 배터리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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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자제품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품인가 소모품인가, 배터리의 딜레마

 

애플이 아이폰의 구형 모델에 배포한 업데이트에 고객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배터리 상태에 따라 고의적으로 성능을 저하시키는 로직을 삽입한 것이 발각되어 한때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애플이 일단 배터리 교체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새로운 업데이트를 배포하는 방안으로 대응했지만 불거진 이슈를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몇몇 법무법인에서 아이폰을 사용자를 대상으로 소송인을 모집해 소송에 나섰으나, 국내에서는 2019년 1월 '아이폰의 고의적 성능 저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로 결정함으로써 역시나 법무법인에만 좋은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세대는 배터리를 교체 가능한 소모품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워크맨이나 라디오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의 배터리는 일반 알카라인이나 망간 건전지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배터리가 다 되면 새것으로 늘 교체했기에 기기의 수명과 배터리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 후 일반 건전지형태의 충전식 배터리가 등장했습니다. 충전식 건전지는 몇 번이고 충전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오래 사용하면 수명이 점점 닳아 이것도 결국 새것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휴대용 전자제품의 사이즈 축소 경쟁이 벌어지면서 기존의 원통형 배터리로는 기기의 사이즈 축소에 한계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전자기기 회사에서는 자체적으로 사각 사이즈의 전용 충전식 배터리를 개발했습니다. 소니에서 나온 '껌전지'가 대표적입니다.

이때부터 사용자는 표준규격의 배터리가 아니라 크기가 맞는 특정 회사의 배터리를 사서 쓸 수밖에 없어졌습니다. 이는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를 비롯해 휴대폰까지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배터리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기본적이었습니다.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새 배터리를 사서 교체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팟을 개발해 시장에 출시할 때 배터리 내부 장착 일체형으로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사용자가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는 제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는 회긱적인 방법이었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날렵하고 얇으며 튼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후 이 트렌드는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에서 기본적인 제품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이를 비나 하던 다른 회사의 스마트폰들도 점차 배터리 일체형 제품을 출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배터리 일체형 제품은 배터리 분리형에 비해 유려한 디자인이 가능하고, 제품의 기계적 강도를 높이며, 더 슬림하고 멋지게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아울러 최근의 스마트폰 기술의 대세가 된 방진과 방수를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이제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 스마트워치 등 대부분의 모바일 기기에 채택되는 전략이 되었습니다.

 

사용자가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이전까지는 충전식 배터리든 일반 건전지든 사용자에게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교환 비용은 사용자가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배터리 일체형 모바일 기기를 첫 휴대용 기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젊은 세대에게는 배터리는 사용하고 있는 기기의 일부분이며 원래 포함된 부품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전체 제품의 한 구성요소이기에 배터리 불량이나 성능 저하에 따른 사용시간 감소가 소모품인 배터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기 자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일체형이기에 소비자가 쉽게 교체할 수도 없고 그 비용도 객관적인 수준인지 검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갈수록 배터리 교체 비용에 따른 사용자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애플 에어팟처럼 고가의 초소형 블루투스 이어폰의 경우 배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작고 일체화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배터리의 성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면 사용자는 고가의 기기 전체가 고장 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워치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애플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 모바일 기기 전반에 걸쳐 소비자와 제조사의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의 매우 높습니다. 제조사가 전통적인 개념, 즉 배터리는 소모품이고 그 교체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고수한다면, 나와 같은 세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건전지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기기 자체의 결함이나 내구성 문제로 인식될 가능성 큽니다.  따라서 어린 세대는 그 비용의 전가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출시된 초기, 배터리 수명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동차는 한번 구입하면 10년 이상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자동차 회사의 대응은 배터리의 무상 보증기간을 많이 늘려주는 것이었고 이는 소비자의 호응을 얻어 하이브리드 자동차 확산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소비자가 배터리를 스스로 교체할 수 없게 만든 모바일 기기에서 배터리는 소모품일까, 부품일까? 수십만 원이 넘는 고가의 기기를 사서 2년 정도 만에 배터리가 수명이 다 되어 성능이 떨어지거나 사용시간이 짧아지는 것이 정상인가? 자동차 회사의 대응 방식을 따른다면 얼마 동안의 기간을 보증해야 할까? 고가의 멀쩡한 소형 기기를 배터리가 오래되었다고 폐기해야 할까? 배터리의 수명이 곧 기기의 수명이 되는 것이 타당한가? 모바일 기기 제조사는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소비자의 불만을 일으키지 않으며, 제조사의 부담이 커지지 않는 선에서 현명한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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